책 한 권 들고 떠나는 가을날의 남이섬
가을이 곳곳에 내려앉았지만, 바쁜 일상에 시달리느라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가을을 느낄 여유가 없다. 몇 시간 투자로 가을날에 풍덩 빠져들기 좋은 곳이 남이섬이다. 배를 타기 때문에 마치 먼 곳으로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데다 섬 곳곳에 다양한 숲과 산책로가 있어 빨강, 노랑, 갈색 등 색색깔의 가을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책 한 권 들고 훌쩍 떠나기 좋은 곳, 혼자도 좋고 여럿이면 더 즐거운 남이섬으로 가을 낭만 여행을 떠난다. |
안개 가득한 남이섬의 아침 |
북한강에 반달 모양으로 떠 있는 작은 섬, 남이섬. 서너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지만 이곳을 찾는 방문객 수는 어마어마하다. 지난해에만 267만여 명이 다녀갔는데, 이 가운데 67만 명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방문객이 꽤 많다.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 줄이 길어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에 치이는 건 아닌가 겁이 날 정도다. 하지만 쉼 없이 배가 오가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다. 또 들어가 보면 구석구석 한적한 곳이 많아 겁먹었던 것보다 훨씬 여유로운 공간을 즐길 수 있다. 배를 타는 게 가장 일반적이지만, 모험을 원한다면 짜릿한 짚와이어에 도전해보자. |
조용하고 한적한 남이섬을 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들어가는 게 상책이다. 11월 9일까지 첫 배는 7시다. 원래는 7시 30분인데 단풍이 아름다운 시기에 한해 첫배 출발 시각이 30분 당겨졌다. 30분 간격으로 다니다가 9시부터는 10~20분 간격으로 다닌다. 첫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일엔 8시에 탑승해도 배에 관광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직원들이다. 또 이른 아침에 찾으면 북한강을 뒤덮는 가을 안개를 볼 수 있다. 해가 뜨면 차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해 8시가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 단, 이른 아침엔 기온이 낮으니 방한에 신경쓸 것. |
남이섬을 가장 효과적으로 둘러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가 보고 싶은, 걷고 싶은 길을 따라가는 게 정답이다.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게 최선이긴 하지만 배를 타기 전에 지도는 꼭 챙기자. 걸어서 보려면 꽤나 피곤하므로 골고루, 구석구석 보려면 자전거를 타는 게 좋다. 섬은 남북으로 길쭉해서 고구마처럼 생겼다. 배에서 내리면 대개는 섬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중앙잣나무길을 따라 걷게 된다. 이 길을 따라 박물관, 전시장, 카페, 식당 등이 줄지어 나온다. 중앙잣나무길의 명물은 촘촘하게 매달린 물방울 모양의 등이다. 앞길을 밝혀주듯 줄줄이 매달린 물방울등은 왠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등이 인도하는 길 끝에 십자로가 나온다. 진행 방향으로 직진하면 요즘 가장 아름다운 송파은행나무길이고, 서쪽으론 드라마 <겨울연가>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아길, 동쪽으론 산딸나무길이다. 이 십자로를 중심으로 호텔 정관루를 비롯해 남이섬의 주요 시설이 몰려 있다. |
중앙잣나무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니세프홀과 신나는 도서관이다. 유니세프홀은 남이섬이 유원지이던 시절 도깨비집으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유니세프 활동을 홍보하고 후원 신청을 받는가 하면, 유니세프 관련 물품을 전시, 판매하면서 수익금은 모두 유니세프에 기증한다고. 남이섬이 단순한 놀이시설이 아닌 이유는 책과 문화, 예술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가꾼 덕분이다. 섬 곳곳에 그림책을 비치한 그림책벤치와 화장실마다 놓인 그림책은 앉아 쉬거나 볼일을 보는 잠시 동안이라도 책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2만여 권이 비치된 신나는 도서관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음껏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세계 86개국의 그림책도 5,000권 이상 있다. 북카페와 연결돼 아이가 책을 보고 미끄럼을 타는 동안 부모는 차를 마시며 책 한 권을 꺼내들 수 있다. 수많은 전시, 공연이 연중 끊이지 않고, 수준 높은 예술 작품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노래박물관, 환경학교, 녹색가게체험공방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
오전엔 동쪽, 오후엔 서쪽 길이 제격 |
이른 아침에는 중앙잣나무길보다 동쪽의 튤립나무길이 좋다. 햇살이 깊이 들어와 노랗게 물든 나무가 더욱 환해 보인다. 동쪽 길은 북에서 남으로 자작나무, 튤립나무, 수양벚나무, 계수나무, 편백나무, 갈대숲이 차례로 이어진다. 대부분 오래된 고목으로 키가 훌쩍 크고 수형도 아름다워 걷는 맛을 더해준다. 길 곳곳에 벤치, 피크닉 테이블, 작은 평상 등이 있어 다리를 쉬거나 책 읽기에 좋다. 오후가 되면 동쪽 길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서쪽 길에 햇살이 쏟아진다. 서쪽 길에는 아카시아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한낮에도 서쪽 강변길은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호젓하게 걷기 좋다. 단, 강 서쪽에 산이 있어 늦은 오후엔 산그림자가 짙고 해가 넘어가면 기온이 급격히 낮아진다. |
남이섬의 단풍은 10월 말경에서 11월 초순이 절정이다. 10월 중순부터 계수나무, 단풍나무가 색깔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해 은행나무로 번지고, 말경이면 노랑은 더욱 노랗게, 빨강은 더욱 빨갛게 짙어진다. 메타세쿼이아, 복자기 등 거의 대부분의 나무가 11월 초순이면 저마다의 빛깔로 절정에 이른다. 남이섬의 단풍 포인트는 역시 송파은행나무길이다.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 자주 등장한 곳이자 가을철 남이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은행나무는 잎이 노랗게 물들 때도 아름답지만, 바닥에 수북이 노란 융단을 깔 때 또 한 번 근사해진다. |
단풍나무는 섬 여기저기에 있지만 숲을 이룬 곳은 백풍밀원이다. 아담한 동산에 수백 그루가 한데 모여 누가 더 붉은지 경쟁한다. 남이풍원 주변에도 단풍나무가 많고, 남이풍원과 메타세쿼이아길 사이에는 큰 은행나무 여러 그루가 연못과 어우러진 경치를 보여준다. 유니세프홀 앞에서 섬 서쪽으로 쭉 뻗은 일편단심사랑길은 연인과 나란히 걷기 좋은 길이다. 이 길 중간에 보이는 자작나무 숲은 하얀 수피와 노란 잎사귀가 어우러져 낭만적이다. 섬 남쪽 끄트머리 즈음에 있는 강변연인은행나무길은 오후에 찾으면 좋다. 마지막 단풍 포인트는 호텔 정관루 앞마당과 후원이다. 남 몰래 키스하기 적당한 작은 숲과 여럿이 함께 걷기 좋은 산책길, 도시락 먹고 뛰어놀기 좋은 잔디밭과 도란도란 이야기가 어울리는 찻집이 두루 조화로운 남이섬에 가을이 깊어간다. 춘천행 열차를 타고 가평역에서 내리거나 잠실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으니 접근성도 좋다. 김밥 몇 줄 싸들고 보온병에 뜨거운 차를 담아 남이섬으로 떠나자. 하루 종일 노란 가을에 물들기 그만이다. |
여행정보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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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김숙현(여행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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