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화 '서편제' 따라 청산도를 여행하다
나는 청산도에서도 여전히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질 못 했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청산도를 만났다.
청산도로 내려가는 길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보았다. 1993년도 영화임에도 지루하지도 않고, 영상이 촌스럽다는 느낌도 전혀 없다. 역시 기술의 발달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압도하지 못하는 듯 하다.
영화는 이청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떠돌면서 살아가는 소리꾼 유봉, 그리고 그 소리를 물려주고자 데리고 다니는 남매 송화와 동호의 삶을 이야기한다. 유봉은 송화가 한이 맺힌 소리를 하게 하려고, 눈까지 멀게 한다.
아슬아슬 무너질 듯한 소리꾼 아버지 유봉의 자존감, 곧 주저앉을 듯한 가난의 연속이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내내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다 유봉, 송화, 동호가 흥이 나서 논두렁을 걸으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햇살, 다랭이논, 그리고 구불구불 논길이 아리랑 장단과 어우러져, 영화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다 풀어 헤치고 즐길 수 있는 장면이었다.
청산도로 떠났다.
↑ 자전거 여행자의 특권. 절경이 펼쳐지면 어디든 내려서 바라볼 수 있다. 양지마을의 전경. 양지에 있다 하여, 양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청산도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서편제 촬영지로 향하기로 한다. 청산도에 머무는 1박2일 동안 하루는 온전히 섬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어 자전거를 대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서편제촬영지로 가려면, 대적산과 보선산 사이 고개(라고만은 할 수 없는 꽤 가파른)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그곳은 일반자전거로 넘긴 버겁다. 그래서 전기자전거를 빌려보았다. 자전거 여행은 청산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 가는 길 내내 풍경이 아름다워 자주 내리다 보니 전기가 금방 닳긴 했지만 …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30초에 걸친 롱 테이크가 촬영 된 곳. 원래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감독이 장소가 너무 좋아 바꿨다는 곳. 푸른바다, 푸른산, 그리고 황톳길이 어우러진곳. - 안내판 내용 中
가을의 파란 하늘 아래 완연한 햇빛을 받은 들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다시 살펴보니 '서편제'의 그 장면 역시 비슷한 계절에 촬영된 것 같다.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된 구들장논은 온돌과 논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갈을 가장 밑에 깔아 물이 잘 빠지도록 하고, 그 위에 구들장, 다시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이다. 흙과 물이 부족하여 고안된 논의 형태라고 하며, 16-17세기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땅은 물과 흙이 부족한 척박한 섬 환경을 보완하기 위한 섬 사람들의 지혜 그 자체인 셈이다.
그 분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청산도에는 초등학교도 4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1개만이 남아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가 각각 한 개씩 남았다. 북적북적했던 곳이 서서히 한산해 진다는 것, 하나 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하루에도 수 차례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서울에서는 잘 상상이 가질 않지만, 몹시나 쓸쓸할 것 같다.
살아가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단 말이여.
- 영화 '서편제' 中
한을 쌓아 두지 않고 구수~한 욕으로 풀어내 버리는 청산도의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청산도의 여행을 미소로 마무리한다.
INFORMATION
청산도에서 자전거 대여하기, 숙박하기
- 느린섬 여행 학교, 슬로푸드체험학습장
- 주소: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양중리 372
- 가는 법: 청산도 도청항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버스가 있다. 기사 아저씨에게 '느린섬 학교'에 간다고 하면 내릴 때 말해준다.
- 홈페이지: http://www.slowfoodtrip.com/
- 전화번호:
- 자전거 대여
- 일반 자전거 1일 5,000원 / 전기 자전거 1일 20,000원(비용은 변경될 수 있음)
-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 하나로 10km 정도 달릴 수 있다.
◆ Writer : moonee
◆ 상세 여행정보: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155418
◆ 출처: Get About 트래블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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