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11, 2014

노추산 모정탑...돌탑에 아로새겨진 어머니의 마음

노추산 모정탑...돌탑에 아로새겨진 어머니의 마음




집안에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아들 둘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마저 정신질환을 앓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산신령이 나타나 계곡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에 우환이 없어질 거라고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때부터 무작정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돌탑 3000개를 쌓으라'

전설 같은 이야기는 불과 3년 전까지 진행됐던 노추산 모정탑에 관한 이야기다. 스물 셋의 나이에 서울에서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강릉으로 시집오게 된 차옥순 할머니. 4남매를 두었지만 아들 둘을 잃고 남편마저 병을 앓았다. 계속되는 인생의 고난 앞에 할머니는 주저 앉아버렸다. 빛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나날이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안반데기'에 고랭지 배추가 자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기이한 꿈을 꾸었다. 산신령이 나타나 3000개의 돌탑을 쌓으면 집안에 우환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절박했던 할머니는 예사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돌탑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장소를 찾아다녔다.

할머니는 율곡 이이 선생과 신라 승려 설총이 머물며 학문을 닦아 크게 됐다는 노추산을 찾았다. 노추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강릉시 경계에 위치한 높이 1322m의 산으로 민족의 스승인 율곡 이이와 승려 설총이 중국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와 같이 학문에 대성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1986년, 차옥순 할머니는 노추산 중턱에 비닐로 움막을 짓고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3000개를 쌓는데 무려 2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었다. 산신령은 다시 꿈에 나타나 '이제 편안히 가시라'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68세의 나이에 두 아들이 있는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2011년 8월 29일이다.




할머니가 쌓은 돌탑의 정성을 사람들이 나누고자 하는 것 같다.

하늘 아래 첫 마을, 율곡 이이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

노추산 모정탑 입구에서 언덕을 오르면 소나무 숲 사이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나온다. 오토캠핑장 반대편 갈림길로 걷다보면 붉은 금강소나무가 반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삼림욕을 하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곳곳에 관광객이 쌓아놓은 돌탑이 눈에 띈다. 여기까지는 여느 산길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다.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걷는 길은 잘 닦여진 평평한 길이 아닌 뾰족한 돌덩이가 곳곳에 박혀있는 울퉁불퉁한 길이다. 매끈하지 않다는 건 아직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았다는 기분 좋은 증거다. 지금은 그나마 길이라도 나 있고 계곡 사이에 다리도 이어져있는 꽤 걷기 편한 길이다. 할머니가 처음 다닐 때는 돌부리는 더욱 뾰족했을 테고 길이 없는 곳도 있었을 것이다. 투박한 산에 할머니가 길을 놓았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돌탑 앞에 숙연한 마음이 앞선다.




모정탑 가는 길에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더위를 식혔다.

계곡을 건너자 이윽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정탑이 나왔다.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길 양 옆으로 빼곡히 어머니의 마음이 쌓여있었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갈하게 쌓여있는 돌이 층을 이뤄 탑이 됐다. 태풍으로 돌탑이 무너질 때마다 할머니는 다시 쌓기를 반복했고 이제는 큰 태풍이 지나가도 흐트러지지 않는 견고한 돌탑이 됐다. 아마 돌과 돌 사이를 할머니의 마음으로 붙였나보다.




태풍이 몰려오던 날, 비구름을 피해 강릉으로 내달렸다.

돌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매일같이 돌을 날라 차곡차곡 쌓았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자식을 앞세우는 건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일거다. 그 뒤로 남겨진 삶은 그리움과 회한, 죄책감으로 점철돼 바늘 위에 올라있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다. 삶은 때론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꼬여있는 매듭을 찾아 실타래를 풀듯 원인을 찾아갈 수 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인생은 때로 물음표만 던져 놓고 만다.

그래도 쉽게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건 희망이 있기 때문일 거다. 할머니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희망이 돌탑을 만들었고 그 돌탑은 사랑의 성지가 되어 발길을 모으고 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돌탑에 기대 소원을 빌고, 그 옆에 조그만 돌탑을 쌓기도 한다. 노추산에 사랑이 모이고 있다.




사람들은 돌탑을 쌓고 '모든 일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금강소나무 길에서 삼림욕하며 개운한 기운을 만끽하자.




무거운 돌을 들고 날랐을 할머니의 손길이 전해진다.




주소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 716

문의대기리 정보화 마을(033-647-2540)

트레킹 코스약 1.2km (소요시간 왕복 1시간~2시간)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협찬 마모트 / hyo@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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